제목: 올드보이
감독: 박찬욱
출연: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최근 들어 내가 어린 시절에 나와 보지 못했던 한국영화의 명작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내가 한국영화의 명작들을 안 본다면 영화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를 그리 많이 관람하는 타입은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 손을 잡고 영화관에 자주 가서 다양한 영화들을 관람했었다. 영화를 본 작품의 수가 많아지고 나도 더 커지면서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생기면서 한국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신파, 클리셰들을 좋아하지 않게 됐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가 개봉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이 아니라면 잘 보지 않게 됐다. 더군다나 요즘은 OTT 플랫폼에 개봉하고 몇 달이 지나면 올라오는 시대가 됐다 보니 비싸진 영화 티켓값에 영화관에서 보는 작품을 고르는데 더욱 신중해지게 됐다.
내가 한국 영화 감독들 중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있다면, 박찬욱 감독님이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고 그런 타입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기준은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과 고민이 많아지는,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다. 박찬욱 감독님의 최근작이었던 '헤어질 결심'은 정말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내가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첫 해외 진출작 '스토커'는 보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는 불편한 요소들을 이야기에 버무리면서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놓지 않게 만든다. '헤어질 결심'에서 살인 용의자와 사랑에 빠지는 유부남 형사, '스토커'에서 자신의 형의 딸에게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느끼는 삼촌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본 '올드보이'는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 중 사회에서 가장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들어갔다는 생각이 든다.
15년의 감금
영화는 갑작스럽게 납치된 '오대수'의 15년의 감금 생활 후 갑작스럽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면서 자신을 감금한 '우진'을 쫓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도'를 만나고 '미도'와 사랑에 빠지고 '우진'의 질문에 해답을 찾는다. '질문이 잘 못 됐잖아요. 왜 가뒀을까가 아니라. 왜 풀어줬을까?'라는 '우진'의 대사처럼 '오대수'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을 쫓고 있지만, 아마 많은 관객들이 '오대수'를 왜 가뒀을까라는 생각만 했겠지만, 사실 그가 갑자기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 더 의아하다. 15년동안 군만두를 먹으며 오로지 TV를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며 길고 긴 감금생활을 하며 도망갈 구멍도 파냈지만, 탈출이 아닌 방생이다. 영화는 질문의 연속이다. '오대수'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이유부터 '미도'와의 만남, 낯선 사람인 '오대수'를 집에 데려와 보살펴 주는 것도 그를 도와주는 것도 모든 게 갑작스럽다. 정말 이 모든 게 아무 이유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의 전개의 일부분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렇게 큰 찬사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우진'의 계획이자 완벽한 복수를 위한 퍼즐 조각이었다. '오대수'는 그토록 원하던 세상 밖으로 나와서도 '우진'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던 것이었다.
'오대수씨는 말이 너무 많아요.'이 모든 일은 '오대수'의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절친에게 말한 하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오대수'는 첫 장면인 경찰서 난동장면에서 그가 얼마나 가벼운 남자인지를 드러낸다. 경찰서에서 난동을 피우고 경찰에게 욕설을 내뱉고 나가는 장면은 그의 입이 방정이라는 하나의 힌트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한 마디로 인해 '우진'의 누나는 죽었다. 금지된 사랑이라고 불리는 남매간의 사랑을 했던 '우진'은 적어도 우리는 진짜 사랑했어요라는 말을 내뱉는다. '오대수 씨랑 미도 씨는 진짜 사랑일까?'라는 질문은 '오대수'에게 완벽한 복수를 선사했다는 쾌감을 던진다. 하지만, 복수 이후에는 큰 공허함이 찾아온다는 '우진'의 말처럼 자신의 누나가 돌아오지 않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자신의 딸인 '미도'와 성관계를 하고 사랑이라 믿고 있었던 '오대수'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모든 게 무너져 내린다. 모든 문제를 야기한 자신의 혀를 잘라버린다. 그리고 '미도'는 진짜 사실을 평생 모르고 살아간다. '오대수'는 자신의 기억을 지운다. 이 모든 건 '오대수'에게는 가장 가혹하고 잔인하고 평생 잊을 수 없는 큰 벌이다.
금지된 사랑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들 중 가장 불편한 소재가 들어간 영화라고 생각한다. 인간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사랑을 표현한다. 사실 부녀간의 사랑, 남매간의 사랑은 가족애로서 정상적인 사랑이다. 하지만, 이를 넘어선 남녀간에 느끼는 '성'적인 사랑은 있을 수 없는 관계다. '우진'은 자신의 누나를 사랑했고 '오대수'와 '미도'는 '우진'이 짠 각본 아래 서로 사랑에 빠진다. 이보다 더 금기된 사랑이 있을까. 실제로 평 중에는 이런 극 중 요소를 두고 아무리 영화지만 너무 불쾌한 설정이라는 평도 있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과 혼동해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조커'가 사회적 큰 반향을 불러왔던 것처럼 영화는 실제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이긴 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는 복수극이라는 장르적 탈을 쓴 사랑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남매간의 결혼이나 사랑, 자신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와의 결혼이나 사랑은 있어왔던 이야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게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사랑의 표현 방식이다. 이 영화에서 '우진'의 사랑은 어쩌면 누나를 좋아하는 순수한 동생의 마음이 잘못된 표현 방식으로 나온 건 아닐까? '오대수'와 '미도'의 사랑은 애초에 '우진'이 짜놓은 각본이지만, '우진'은 이런 대사를 뱉는다. '오대수 씨와 미도는 진짜 사랑에 빠진 걸까요?' '오대수'와 '미도'는 부녀지간으로써 단순히 부녀의 사랑을 느껴 끌렸을지도 모른다. 과연 무엇이 진짜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유지태
이 영화에서 '최민식'님도 정말 연기를 훌륭하게 했지만, '유지태'님의 연기가 진짜 강렬했다. 선한 마스크를 가지고 있는 '유지태'님의 연기는 그야말로 최고의 카타르시스였다. 더 이상 잃을게 없는 그에게 남은 거라고는 오로지 복수인 '우진'의 연기를 정말 훌륭하게 했다. 이 역할이 원래 '이병헌'님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에게 갔었지만, 여러 가지 맞지 않아 '유지태'님이 하게 됐다고 들었는데, 이 역할이 처음부터 '유지태'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찰떡이었다.
'유지태'님이 연기한 '우진'이라는 역할이 악역으로 나오지만, 과연 그를 진짜 악인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를 정말 '싸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라고 부를 수 있을까는 모르겠다. 그의 사랑을 파멸로 이끈 '오대수'가 악인일까? 그로 인해 평생을 복수심에 살아와서 이런 행동을 일으킨 '우진'을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그의 금지된 사랑이 모든 문제를 불러일으킨 것일 수도 있다. '오대수'의 가벼운 말이 모든 문제를 야기시킨 것일 수도 있다. 금지된 사랑을 한 '우진'이 잘못일까? 남의 비밀을 발설한 '오대수'의 잘못일까? 그리고 그렇다면 이런 잔인한 복수극을 일으킨 것은 합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명작
이 영화를 두고 대부분의 사람이 명작이라고 부른다. 내 개인적으로는 재미도 있고 생각할 거리도 있는 좋은 영화임은 맞다. 그러나 이런 불편한 요소들로 인해 일반 대중들 중에서는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런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스타일을 좋아하기에 '올드보이'이 역시 감명 깊게 봤다. 한국영화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준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주인공이나 이야기는 깊이가 있다. 한국영화를 즐겨보지 않는다고 했지만, 내가 즐겨보지 않는 영화는 단순한 오락성 영화, 신파나 클리셰, 국뽕이 가득해보이는 영화들을 보지 않는다. 영화의 다양성은 당연히 중요하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과 정성이 들어갔냐가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올드보이'를 비롯해 한국에는 수많은 명작들이 있다. 한국 영화의 힘은 할리우드 영화의 화려함과 달리 가장 평펌 하지만 특별한 이야기가 그 힘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영화들이 앞으로도 많이 나와 한국 영화가 더욱 큰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앞으로 내가 어릴 때 나와 보지 못했던 한국 영화 명작들을 관람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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