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이야기를 주로 쓰는 블로그는 아니었지만,
요즘 너무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북런던을 연고로 하는 머나먼 땅,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 이야기다.
해버지 시대에 해외축구를 보기 시작하고 홍대병으로 인해 아스날 팬이 된 나는
아스날의 황금기를 보지 못하고 여러 암울한 시기를 주로 본 그런 팬이다.
그럼에도 아스날을 보면서 기쁘기도 슬프기도 하는 진성 팬인데
나도 머나먼 땅의 축구 클럽에 이렇게 과몰입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무튼 요즘 아스날의 상승세가 심상치가 않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리그 우승은 커녕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따내는 데에만 급급했는데
이번 시즌은 리그 1위로 전반기를 맞이하고 리그 2위 맨체스터 시티와
1경기를 덜 치르고도 승점 5위 차이로 앞서고 있다.
결과의 순위만 높다면 이렇게까지 행복해하지는 않았을 텐데
경기력과 팀의 분위기까지도 너무 좋다.
아스날의 홈구장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그동안 유령 홈구장이라는 놀림도 많이 받았다.
홈구장이라면 홈팬들의 응원 열기로 원정팀의 기세를 눌러야 하는데
암흑기가 워낙 길다 보니 팬들의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별명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은 이곳이 아스날의 홈임을 강한 기세로 보여주고 있다.
경기장에서의 팬들은 큰 목소리로 응원가를 부르고 선수들의 사기를 드높이고
원정팀들이 아스날 홈으로 오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있다.
선수들과 코치진은 팬들과의 소통과 유대감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지난 맨유, 토트넘 전 라이벌 더비에서의 승리 이후 선수들과 코치진들이
팬들과 기쁨을 나누는 장면은 올 시즌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 싶다.
최근 기세에서 가장 팬들을 놀라게 한 선수는 은케티아가 아닐까 싶다.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인 제주스가 월드컵 기간동안 당한 부상으로 빠지게 되면서
아스날은 그의 빈자리에 대한 걱정을 크게 했는데 은케티아가 오히려 더 나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즌 재계약을 하면서 팀의 상징인 14번을 달게 됐을 때
많은 팬들은 이 선수가 킹앙리 14번을 이어받게 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현했지만,
팀의 레전드인 이안 라이트의 말처럼 등번호는 그저 등번호 일뿐 그 선수가 활약을 잘할 수 있도록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응원하자는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이 맞았던 것 같다.
실제로 은케티아도 14번이라는 등번호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부담 없이 플레이하는 것 같았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좋은 플레이로 드러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제주스가 부상당한 이후로 새로운 공격수를 겨울 이적시정 때 영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는데
지금 이렇게 플레이를 해주면 전혀 그런 걱정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제주스의 자리를 위협할 만큼 선의의 경쟁구도도 만들 수 있지 않나 싶다.
은케티아의 큰 장점은 뛰어난 위치선정과 어떻게든 득점을 해내는 득점력인 것 같다.
현재도 홈경기 6경기 연속골을 득점하고 몇 경기 전만에도 선발 경기에서 모두 득점을 성공했었다.
그리고 은케티아는 사카, 스미스로우와 같은 아스날의 유스 출신이다.
그래서 팀에 대한 충성심도 남다르고 팬들도 이 선수에 대한 애정도도 다르다.
뭐든 그 팀의 유소년 출신 선수가 프로 1군 팀에서도 활약할을 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지금 아스날의 2선을 꾸리고 있는 세 명의 공격수들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카요 사카, 마틴 외데고르, 가브리엘 마르티넬리가 보여주는 2선의 파괴력은 리그에서
감히 말하건대 가장 강력한 2선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특히, 사카와 마르티넬리는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성장해 어느새 탑급 윙어로 성장하면서
지금은 팀의 주축으로 훌륭하게 성장해 주었다.
외데고르 역시 레알 마드리드에서 유망주로 평가받다가 아스날에 와서는
레알 산 왼발 외씨가문임을 입증하듯이 정말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부카요 사카는 팬으로서 정말 애착이 많이 가는 선수다.
어린 시절 77번 등번호를 달고 팀이 위기일 때 해성처럼 등장해서
왼쪽 윙백부터 여기저기 뛰면서 어린 나이부터 팀의 큰 공헌을 했다.
어린 나이부터 많은 부담을 받고 많이 뛰다 보면 잘 못해서 잘 성장을 못할 수도 있지만
부담감을 이겨내고 정말 훌륭하게 잘 성장해 줘서 맨유전에서도 원더골을 넣는 등
아스날의 팀 에이스 7번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르티넬리 역시 굉장히 어린 나이에 아스날로 와서
조금씩 경험을 쌓더니 이번 시즌 역대급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저돌적인 드리블과 과감한 슈팅은 사카와 다른 파괴력을 보여주면서 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마지막 외데고르는 어린 나이에도 노르웨이 국가대표팀의 주장인 점을 살려
팀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주장으로서 팀을 아주 잘 이끌어나가고 있다.
파이팅 넘치는 태도와 전투적인 플레이는 팀에 전에 없던 주장으로써의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리고 레알 산 왼발 외씨인 외질의 계보를 이어 아가면서도 다른 스타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전반기가 끝난 지금 벌써 지난 시즌 공격 스탯을 넘어서면서
활약에 비해 공격 스탯이 아쉬웠는데 이번 시즌에는 그 아쉬움을 떨쳐냈다.
개인적으로 팀에서 나름 또 애착이 강하게 가는 선수는 그라니트 자카다.
벵거 감독의 마지막 영입이기도 한 자카는 그동안 많은 비난을 받아왔었다.
다혈질인 성격과 불안한 수비능력은 팀을 여러 차례 중요한 상황에서 위기에 빠트려왔다.
하지만 지금의 자카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황카로 다시금 태어났다.
이전에는 3선이나 아래에 배치되어 수비 임무가 많이 부여되었지만
지금 파티가 영입된 후로는 더 높은 곳에서 전진을 하게 되면서 그의 능력이 100% 발휘되고 있다.
좋은 왼발 킥력과 우직하게 밀고 들어가는 전진 능력은 아스날의 공격에서 외데고르와 함께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리고 전 주장이었던 만큼 팀을 이끌어가는 의지도 아주 보기 좋다.
실제로 그가 보여주는 라커룸에서의 영향력은 아주 크다는 말이 많았다.
아직 다혈질의 성격을 완전히 죽이지는 않았지만,
과거 비에이라처럼 이런 전투적인 선수는 팀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비난도 많이 하고 실망도 많이 했지만 지금의 자카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하고 사랑스러운 선수다.
아스날은 토마스 파티가 영입된 후와 전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이 선수가 가지고 온 변화는 크다.
3선에 대한 중요성은 현 축구 시대에 많은 팀들이 큰 고민을 가지고 있는 자리이다.
아스날 역시 파티가 오기 전까지는 가장 취약한 자리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또 파티가 왔다고 당장 큰 변화가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잔부상에도 많이 시달리고 적응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 시즌에 파티는 팀의 상승세와 더불어 큰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안전한 볼키핑능력과 볼운반능력, 적절히 끊어내는 수비력과 한 번씩 때리는 위협적인 중거리 슛까지
이제 남은 걱정은 파티가 또 부상으로 빠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밖에 없다.
사실 아스날의 뎁스가 두터운 편이 아니어서 지금 현 베스트 11에서 몇 자리만 구멍이나도 이 상승기세가 꺾여버릴 것 같다.
제주스 부상을 은케티아가 잘 메워주고 있지만 모든 후보자원이 그럴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파티의 백업은 엘네니인데 잘하는 경기에서는 정말 잘하지만,
안정감은 있지만 볼 전진 능력에서는 아쉬움이 조금 있는 선수라 파티가 건강하게 이번 시즌을 마쳐주기 바랄 뿐이다.
다음은 아스날에 새로 합류한 수비수 자원들이다.
살리바는 사실 아스날에 합류한 지는 오래됐던 선수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합류하고 임대를 많이 다녀서 실제로 뛴 시즌은 이번 시즌이 처음인데
개인적으로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중앙 수비수가 아닌가 싶다.
수비력도 좋고 발밑도 좋고 스피드 좋은데 나이도 어리기에 앞으로 아스날 수비의 핵심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진첸고는 이 선수가 왜 맨시티에서 주전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원래 미드필더 출신이어서 발밑 능력도 좋고 맨시티에 뛰었던 만큼 아르테타와 전술 결이 같아서
현재 아스날에 아주 찰떡인 선수가 되었다.
특히 지난 맨유 전에서는 안토니를 완전히 묶어놓으면서도 공중볼도 잘 따는 등 수비력도 아주 좋았다.
진첸코의 영입은 이번 시즌 아스날 전술에서 아주 중요한 영입이었다.
이 밖에도 풀백 벤 화이트의 변신과 마갈량이스가 가끔 실수도 하지만 그래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합도 좋고 개별 능력도 훌륭해 현재 아스날의 상승세에 수비수들의 능력도 아주 큰 기여를 했다.
마지막으로 아스날의 수문장 애런 램스데일이다.
사실 영입 당시만 해도 골키퍼에 이렇게 비싼 금액을 쓰는 것과
본머스라는 하위팀의 골키퍼이게 여러 의구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은 말끔하게 씻어내 주었다.
놀라운 선방능력과 쭉쭉 뻗어나가는 빌드업 능력은 현 골키퍼 트렌드에 아주 알맞은 선수다.
레만 이후 믿음직한 골키퍼가 없었는데 램스데일은 정말 훌륭한 것 같다.
나이도 젊고 잉글랜드 선수에 선방능력, 발 밑 능력이 아주 준수하다.
그리고 열정도 대단해서 보는 내내 팬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만든 아르테타 감독을 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부임 초반에는 여러 가지 역경이 많았다.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많은 호평이 많았지만 초반에는 팀이 9위로 시즌을 마감하기도 하고
지난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지난 시즌에는 물론 경기력 측면에는 좋았지만 성과가 좋지 않아 팬들의 우려도 많았다.
그리고 돈도 꽤나 많이 썼기에 과연 아르테타가 말한 3년 계획이 잘 실행될까 봐 걱정이 많이 됐다.
근데 놀랍게도 올해가 3년 계획의 마지막인 해인데 기가 막히게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놀랍도록 향상된 경기력과 팀의 사기와 열정은 하늘을 치솟고 있다.
에두와 아르테타가 오래 공을 들인 프로젝트는 드디어 성과를 보이고 있다.
젊은 감독인 만큼 젊은 선수들과 잘 융화되고 전술적인 부분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무엇보다 차근차근 준비해서 영입해 온 선수들의 성공도 크게 한몫했다.
이전에는 영입한 선수들의 실패가 많았지만,
에두와 아르테타가 치밀하게 분석하고 데려온 선수들이 모두 제 몫을 다해내고 있다.
올 시즌 아르테타 감독의 아스날이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해도 된다.
리그 컵이나 FA 컵, 유로파 컵 등 다른 컵을 들어 올리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이번 시즌에는 아스날의 투지와 경기력이 앞으로의 아스날을 기대하게 만들어준다.
팀은 활기를 되찾았고 우승에 대한 열망이 다시 생겨났다.
아르테타는 매일 선수들에게 빈 우승컵 전시장을 가리키면서 우승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아스날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아스날의 경기를 챙겨보지 않았었다.
무기력하고 재미없고 좋지 않은 결과의 경기가 반복됐었다.
팀은 분열되고 활기는 사라졌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스날은 옛날에 활기를 되찾았다.
조용했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요새가 되었고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계속 외쳐 댄다.
지금은 아스날의 경기를 보는 것이 너무 재밌다.
이기는 것과 별개로 정말 우리가 원하는 축구를 하고 있다 보니 보는 내내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린 시절 해외축구에 빠져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졸린 눈 비비며 보던 나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었다.
이번 시즌은 이미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11년 만에 나도 드디어 아스날이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어본다.